1925~1926년 수원고등농림학교 (水原高等農林學校) 3학년 (學年) 재학중 (在學中) 동교 (同校) 의 김찬도 (金燦道) , 권영선 (權永善) 등 다수 학생 (多數學生) 이 농림야학생 (農林夜學生) 들에게 민족의식 (民族意識) 을 계몽 (啓蒙) 하여 오다 비밀결사 (秘密結社) 건아단 (健兒團) 과 계림흥농사 (鷄林興農社) 라는 비밀결사 (秘密結社) 를 조직 (組織) 하여 농민교양 (農民敎養) 에 힘써오던 중 한국 미간지 (韓國未墾地) 를 개척 (開拓) 하여 이상재 (理想材) 를 만들고 이것을 기반 (基盤) 으로 ‘조선독립’ (朝鮮獨立) 을 실현 (實現) 하기 위해「조선개척사 (朝鮮開拓社) 」라는 비밀결사 (秘密結社) 를 만들어 활동 (活動) 하다 피체 (被逮) 되어 18개월간 (個月間) 에 걸쳐 심리 (審理) 를 받아 면소 처분 (免訴處分) 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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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함남 삼수(三水) 사람이다
1926년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에 재학 중 동교생 김찬도(金燦道)·권영선(權永善) 등과 함께 농촌야학을 개설하고 민족의식을 계몽하여 오다가 비밀결사 건아단(健兒團)을 조직하여 농민대중 개발과 신조국 건설을 목적으로 단군(檀君)연호를 사용하며 단원모집에 힘썼다.
이들은 1927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직된 조선농우연맹(朝鮮農友聯盟)과 연계하여 활동하는 한편 건아단을 계림흥농사(鷄林興農社)로 개칭하고 농민교양에 힘쓰면서 국내의 미개지(未開地)를 개척하여 이상촌을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조국독립을 실현할 것을 계획하였으며 1928년 조직을 다시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로 변경하고 활동하다 같은해 9월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8개월간의 구금 끝에 1930년 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면소처분(免訴處分)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673∼67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544·546·547面
- 東亞日報(1928. 9. 16, 1930. 2. 21)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906·907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31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