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1919년 당시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학생으로 이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문화향(文化鄕)으로 불리어지는 광주 지방에는 학자들도 많았지만 신학문에 대한 향학열에도 영향을 주어 3·1독립운동이 일어날 무렵에는 서울 및 일본 등지의 유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들 유학생들을 통하여 새로이 전개되는 세계 정세와 독립운동의 움직임도 일찍부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1919년 3월 10일 부동교(不動橋) 아래의 작은 장터에서 1천여 군중과 함께 시내의 큰 거리를 누비며 시위행진하여 광주경찰서 마당에 들어가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8. 13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88·289面
- 判決文(1919. 4. 30 光州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