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곡성(谷城) 사람이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목격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30년 4월 15일 동지인 정동화(鄭東華)·한덕명(韓德明) 등과 노동회(勞動會) 결성을 논의하고 각기 곡성군 관내 3개면(面)씩 책임을 맡아 조직하기로 한 후 가산을 조판(調辦)하여 활동하다가, 비밀결사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가 광주(光州)에서 조직됨으로 이에 흡수, 재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총비서(總秘書)에는 김호선(金好善)이 선출되었으며 그는 면(面)의 하부조직을 맡아 농민의 독립정신 고취를 위한 활동을 벌이던 중 1932년 10월 16일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33년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36년 10월 출옥하였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이듬해 사망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大韓忠義孝烈錄(卷之下) 428面
- 湖南節義錄(1964. 5. 12 人卷) 971面
- 靈山寧越辛氏文宗公派譜(4) 392面
- 玉果邑誌(忠義篇, 1965年刊) 6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