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일본 제국주의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창신은 1925년 3월 경상북도 사법학교 강습과(講習科)를 졸업한 후 대구 수창공립보통학교(壽昌公立普通學校), 칠곡군(漆谷郡) 신동공립보통학교(新洞公立普通學校) 등에서 교직에 종사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30년 퇴직한 이후 동아일보 봉화지국 기자 겸 중앙일보 봉화지국을 경영하는 한편 미곡상을 하며 지역사회에 명망을 넓혀 나갔다. 김창신은 교직시절부터 일본 제국주의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를 연구하여, 이를 보다 체계화할 동지의 규합과 비밀결사의 조직을 계획하고 있었다.
1932년 11월 김창신은 봉화군에서 동지들과 회합하여, ‘절대적으로 자유평등한 신사회 건설’을 지향하며 비밀결사 흑색청년자유연합(黑色靑年自由聯合)을 조직하였다. 이후 무정부주의 연구를 심화시키는 한편 봉화군 내 사방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을 대상으로 동지를 규합코자 활동하다가 ‘일본 국체를 변혁하고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했다’며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대구지방법원으로 송치된 김창신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34. 4. 2)
- 名籍表(大邱刑務所長)
- 동아일보(1933. 7. 14, 7. 19, 1934. 4. 4)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34. 5.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권 787~7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