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충북 옥천 출신인 유재혁은 1925년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동교 및 옥천군청 소사(小使)로 근무한 바 있었다. 1939년 소사일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행상일을 하던 그는 옥천군수 최병협(崔秉協)이 『경성일보(京城日報)』에 투고한 동년 7월 11일자 신문기사를 보고 분개하여 최병협에게 이를 질타하는 서한을 보냈다.
최병협이 게재한 기사는 1939년 중국 화북(華北)전선에서 사망한 육군특별지원병(陸軍特別志願兵) 이인석(李仁錫)의 죽음을 현창(顯彰)한 부일적(附日的) 기사였다. 이인석은 충북 옥천군 서면 출신으로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 제1기로 전쟁에 동원되었다. 한때 전도유망했던 옥천 청년 이인석은 일제 침략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사망했지만, 일제는 그의 죽음을 ‘영예로운 죽음’으로 미화하며 한국인 군사동원의 표상(表象)으로 삼으려 했다. 이에 동조한 최병협은 이인석의 죽음과 유족의 태도를 ‘군인가족의 귀감이 된다’며 호도했다.
이를 본 유재혁은 “늙은 부모와 처를 둔 이인석을 흉계로 전장에 보내 전사시켰음에도 일본의 노예로 아첨한다”며 크게 꾸짖는 편지를 최병협에게 보냈다. 그러자 일제는 그가 육군 형법을 위반했다며 체포하였다. 경성복심법원에서 금고 1년을 선고받은 유재혁은 1년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40. 6. 7)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