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봉양면 사부리(鳳陽面 沙阜里)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각지의 만세운동에 호응하여 거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이 지역 유생의 한사람으로 자택에서 태극기 2매를 만들어 가지고 1919년 3월 17일 밤에 동리 주민 1백여 명을 규합하여 마을 앞 동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주동하였다. 다음날 그는 같은 동리에 사는 이복구(李福求)·이종광(李鍾光)과 더불어 협의하여 밤 8시에 수십명의 주민과 다시 앞산에 올라 밤이 깊도록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고 대구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 항고하였으나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6. 5 高等法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4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13·1314面
- 判決文(1919. 4. 10 大邱地方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75·37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