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평북 정주(定州) 사람이다. 1918년 6월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춘원 이광수(李光洙)와 함께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1919년 7월 안창호(安昌浩)·이광수 등의 발의로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구체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내에 조직한 임시사료조사편찬부(臨時史料調査編纂部)의 위원에 선임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위원인 김두봉(金枓奉)·김병조(金秉祚)·이원익(李元益)·장 붕(張鵬)·김 한(金翰)·박영근(朴泳根)과 함께 사료편찬에 착수하여 동년 9월 23일 「한일관계사료(韓日關係史料)」 전4권을 편찬하였다. 이어 1919년 9월 2일 국내외 동포들에게 임시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하여 임시정부 국무총리(國務總理) 직속 하에 설치한 섭외부 선전위원에 피선되어 선전사무를 담당하며 1921년 10월까지 활동하였다. 1920년 2월말 임시정부 국무원 총리(國務院 總理) 이동휘(李東輝)와 이동녕(李東寧)의 비서로 재직하였으며, 동년 5월 27일 안창호의 주선으로 흥사단(興士團)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3월 1일에는 상해판 〈독립신문〉(獨立新聞)의 편집위원으로 활약하면서 동신문에 3·1독립운동을 노래한 「3月 1日」과 「오오! 自由」란 시를 게재하여 민족의 독립의식 고취에 공헌하였다. 그 후 1922년 3월부터 1930년 7월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및 노스웨스트대학, 독일 베를린대학 등지로 유학하여 교육학을 전공하고 1931년에 오산(五山)학교 교장, 1933년에는 연희(延禧)전문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며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는 흥사단의 단원으로 독립운동의 선전과 외교를 담당하였고,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하면서 독립군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49·330·362·36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44·34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306·416면
- 독립신문(1919. 9. 6)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622·623면
- 월간중앙(1979. 3월호) 85·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