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담양(潭陽) 사람이다.
1914∼1919년 영광보통학교(靈光普通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주의교육을 실시하였고 1919년 3월 서울 탑골공원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영광(靈光)의 독립만세시위운동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교사직에서 강제 해임당하였다고 한다.
1922년 3월∼1925년 3월 후세교육을 위해 영광학원(靈光學院)을 설립하여 정규학교인 영광중학교(靈光中學校)로 발전시켰으나 경영난으로 폐교되었으며 1934년 영광청년회(靈光靑年會) 회장으로 항일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면서 특히 인근 4개군(郡)인 영광·고창(高敞)·장성(長城)·정읍(井邑)의 체육대회를 개최하여 민족의식 고양과 청년들의 단결심을 고취하였다.
그는 1937년 9월 영광지역의 민족지도자를 검거하기 위해 일경이 조작한 사건의 주모자로 구속되어 미결상태로 1년 4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193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면소처분을 받아 출감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執行原簿(1939. 2. 4 光州地方法院 木浦支廳)
- 옥골당의 傳統文化(靈光郡守發行, 1983. 8. 15) 55∼16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