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북 임실(任實)에서 일제의 압제에 벗어나고 현 사회제도의 개혁을 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1월 15일 오전 10시에 임실청년동맹회관에서 조선청년총동맹 임실청년동맹 창립대회가 열려 임시집행부를 뽑았는데, 집행위원장에 이명수(李明壽)가 선임되고, 박득수는 체육부장에 임명되었다. 오후 5시 같은 장소에서 임실청년동맹 임실지부 설치대회가 열렸는데, 집행위원장에 최일(崔一)이 선임되고, 그는 정치부 위원에 임명되었다.
1928년 10월경에 전북 김제군 김제면에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였다. 박득수는 고려공산청년회의 임실면 야체이카에 속하고, 임실면에서 3회 야체이카를 조직하여 사회문제에 대해 토의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1929년 3월 12일, 임실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9년 5월 6일, 임실에서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졌다. 박득수는 1931년 5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 300일 통산)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1932년 7월 18일에 출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拘留狀(西大門刑務所, 1929. 5. 6)
- 豫審請求書(京城地方法院 檢事局:1929. 5. 15)
- 제1회·제2회·제3회 被告人訊問調書(京城地方法院 豫審掛:1930. 10.20·10.26·12.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朝鮮獨立思想運動의 變遷(조선총독부 법무국) 87면
- 朝鮮日報(1930. 12. 10, 12. 18, 12. 19)
- 每日申報(1930. 12. 10)
- 東亞日報(1931. 5. 15)
- 제1회·제2회 被疑者訊問調書(京城地方法院 검사국:1929. 5.6, 5.10)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31. 5. 14)
- 附錄 最近全鮮治安維持法違反事件確定判決集, 思想月報 제3호(1931. 6. 15)·제5호(193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