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영양(英陽) 사람이다.
정섬첨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의 변보(變報)를 전해듣고 비분강개하였는데, 이어서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해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그 분노는 폭발하여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영양에서 일어난 김도현 의진을 지원하였다.
벽산(碧山) 김도현 의병장은 을미년 11월 일제가 단발령을 강요한다는 급보를 받고 거의하였다. 그리하여 김도현 의병장은 1895년 12월 청량산에서 거병하여 전투적 의병으로의 위용을 갖추었다. 그 후 민용호(閔龍鎬) 의진의 요청으로 김도현은 6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강릉으로 진군하여 연합작전으로 강릉·정선·삼척 일대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그 후 을미의병은 1896년 여름 거의 해산하였고, 광무황제도 의병해산에 관한 조칙을 내리고 선유사를 각지에 파견하여 해산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김도현 의진은 해산하지 않고 소청(小靑)의 검각산성(劍角山城)에 본진을 두고 면내에 통문을 돌리며 의병들을 모아 항쟁을 계속하였다. 정성첨은 이같은 김도현 의진을 지원하던 중 1896년 5월 12일 일본군이 출몰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30여 명의 민병(民兵)을 이끌고 영양군 입암면(立岩面) 연당리(蓮塘里) 사부령(思夫嶺) 고개에서 일분군을 습격하였으나 무기의 열세로 패배하였고, 이 전투중에 정성첨은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제문(1898. 5. 12)
- 사부령순국지사 합동기념비문(1990년 건립)
- 충효문화강좌(I)(영양문화원, 1991) 6면
- 영양군지(1991. 7. 3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2집 34·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