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정판동은 서울에서 손병희(孫秉熙) 등이 3.1운동을 전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그는 3월 6일 오전 7시경 박용화 등과 함께 임천 읍내로 향하였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부착하고 군중들을 독려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 면사무소와 공립보통학교로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정판동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公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를 선고받고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1919. 4. 4)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45~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