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북 영양(英陽) 출신 의병장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의 아우로서 김도현의진(金道鉉義陣)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1월 안동부 관할 각 군에서 봉기한 의병들은 경북 상주 함창의 태봉(胎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병참부대를 공략하였다. 이 때 김도현은 선성의진(宣城義陣)의 중군장(中軍將)으로 태봉전투(胎峰戰鬪)에 참전하였다. 그 후 김도현은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강릉(江陵)에서 활동하고 있던 민용호부대(閔龍鎬部隊)의 초청을 받아 활동하는 등 10월 15일까지 항전하였다. 1903년 김도현은 영양·청송·진보·영덕·영해 등의 오읍도집강(五邑都執綱)에 임명되어 화적 토벌에 참여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김도현은 서울로 올라가 상소를 올리는 한편, 외국 공관에 <포고서양각국문(布告西洋各國文)>이라는 포고문을 발송하여 역적의 처단과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였다. 1906년 1월 27일 오읍도집강 시절 양성한 사포(私砲) 5·60명으로 영양에서 창의하였으나 안동진위대(安東鎭衛隊)에 체포되어 대구감옥에 구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06년 가을 고종황제의 기의밀칙(起義密勅)을 받은 김도현은 <의격고삼남각군문(擬檄告三南各郡文)>을 발송하여 국권회복을 역설하기도 하였으나 기의(起義)에는 실패하였다. 1909년 영양에서 영흥학교(英興學校)를 설립하고 신교육구국운동(新敎育救國運動)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김동현은 1896년 김도현의진에 참여하여 경북 상주 태봉에서 왜적 5명을 사살한 것을 비롯하여 강릉, 삼척, 영양 등지에서 전투를 전개하였고, 1906년 김도현의진의 2차 봉기 준비과정에서 체포되어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집, 24·30~36면
- 靑軒遺稿(金性洙, 1960) 卷一 家狀
- 碧山文集(金道鉉)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