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20년 10월 중순부터 1921년 2월 초까지 경북 영덕군 창수면 (蒼水面) 등운산(騰雲山)에서 김덕문(金德文) 등과 같이 은거하면서 조국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의 모집방안을 계획하였다.
그는 1920년 음력 11월 김기학(金奇鶴)·김덕문·이백이(李栢伊) 등과 함께 인양동(仁良洞) 신세희(申世熙)의 자택에 들어가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 4,000원을 요구하였으나 소지금(所持金)이 없어 200원만 수령한 것을 비롯하여 인양동·삼읍동(三邑洞)·울진군(蔚珍郡) 등지에서 수차에 걸쳐 군자금 수합을 기도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1921년 3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죄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21. 3. 21 大邱地方法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分冊 553·55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