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남 공주(公州) 사람이다.
1900년 대한제국(大韓帝國)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의 보병과에 입학하여 1903년 9월 20일 졸업한 뒤 1905년 4월 18일부터 육군 보병 참위(參尉)로 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에서 근무하고 1907년 4월 30일 육군 보병 부위(副尉)로서 진위보병(鎭衛步兵) 제2대대에서 복무하였다.
1907년 유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하중환(河重煥)·안상덕(安相德)·김기수(金基洙)와 함께 경북 안동(安東)에서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여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개화된 구국교육으로 후진양성에 주력하였다.
동년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상동교회(尙洞敎會) 지하실에서 조직하여 일제침략에 대항하는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9월에는 신민회의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적합한 후보지역을 물색하기 위하여 이회영(李會榮)·이동녕(李東寧)·장유순(張裕淳) 등 4명이 함께 백지(白紙)장수로 가장하여 간도(間島)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정착지 선정활동을 하였다.
1911년 봄 신민회에서 지난해 독립운동기지건설을 위한 답사보고에 따라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경학사(經學社)를 조직하는 한편 조국광복을 위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창설하니 그는 이동녕·이광(李光)·윤기섭(尹琦燮)·김창환(金昌煥) 등과 함께 군사교관이 되어 사관생도들의 훈련을 담당하였고,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한 본래의 취지에 따라 육영영농에 필요한 자금의 수합에 힘썼다. 이를 위해 1916년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모집하고자 입국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배재학당(培材學堂)의 학생동원 책임자로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勅命(軍部大臣 陸軍副將 權重顯副署)
- 日省錄(高宗篇) 第44卷 20面
- 寫眞(協東學校 幹部 : 柳寅植·金東三 등 7名)
- 獨立運動家 아내의 手記(李恩淑) 14·15·16·24·17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0卷 325面
- 韓國日報(1989. 1. 27)
- 卒業證書(1903. 9. 20)
- 辭令狀(軍部大臣 陸軍副將 權重顯副署)
- 友堂 李會榮 略傳(李丁奎) 3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8卷 161·360·36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