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평양(平壤) 대성학교(大成學校) 교사로서 신민회(新民會)와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등을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숭실중학(崇實中學)을 거쳐 숭실대학을 졸업한 그는 1908년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등이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울 때 교사로 참가하여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08년 11월 도산의 권유로 학교 관리와 교수 방침을 정비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되어 장응진(張應震) 등과 함께 일본 학교들을 시찰하기도 했다. 그는 도산에게 도서관 설립을 제의하는 등 대성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청년학우회 발기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울러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밀결사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평양지회 평의원과 반장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12월 일제가 날조한 소위 데라우치[寺內]총독암살모의사건(105인사건)으로 체포되어 1912년 재판에서 징역 6년을 받은 후, 1913년 3월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약 2년 3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12. 9. 28)
- 每日申報(1912. 7. 11·9. 29, 1913. 3. 21·3. 23)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1권 775면, 제2권 66·67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6) 제1권 259~276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3. 3. 2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권 758·760~765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4권 202·217~2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