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남 마산(馬山) 사람이다.
1919년 당시 마산군 상남읍(上南邑)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에서 대한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높아졌고 이러한 소식과 아울러 독립선언서가 이곳 마산에 전달되자 전통적으로 항일저항정신이 강하였던 이곳의 애국인사들은 비밀리에 독립만세운동의 계획과 준비를 서둘러 갔다.
그는 1919년 3월초 이곳에서 이형재(李瀅宰)·명도석(明道奭)·이정찬(李廷瓚) 등과 협의하고 또 학생대표에게도 연락하여 구마산(舊馬山) 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모든 준비물은 보부상(褓負商)을 가장하여 장터로 운반되고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는 여학생들의 치마폭에 감추어 장꾼사이에 끼어 반입되었다. 오후 3시경 학생을 비롯하여 장꾼들까지 3천여명의 군중이 모이자 만세시위는 본격화되었고 독립만세소리는 장터를 진동시켰다. 계속되는 대규모의 만세시위에 속수무책인 일경은 증원군의 응원을 받아 총검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이를 저지하였는데 이때 그는 주동자의 한사람으로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처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照會回報書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38面
- 3·1運動實錄(李龍洛) 644∼64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