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광주(光州) 사람이다.
1919년 1월 일본 동경에 있는 조도전대학 (早稻田大學) 경제학부에 재학중 조선기독교청년회의 서기로 선출되어 재일유학생 단합을 위해 활동하면서 각종 연설회, 집회 등을 통하여 민족정기와 독립정신을 고취하면서 시대사조(時代思潮)를 전파하여 조서민족의 진로를 자각케 하는데 주력하였다. 1919년 2월 윌슨 미국대통령의 '약소민족 자결 원칙'이 세계에 천명되자, 회원 40여명과 함께 재일 유학생(在日留學生)이 중심이 된 독립선언을 비밀리에 추진할 때 각 부서 연락과 서무를 맡아 활동하였으며, 2월 8일에는 3,000여명의 유학생을 동경 신전구(神田區)에 있는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집합케 함으로써 역사적인 독립선언을 발표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1919년 2월 7일에는 일본 동경에서 백관수(白寬洙) 집의 김도연(金度演)·이종근(李琮根)·최원순(崔元淳)·최승만(崔承萬) 등이 함께 합석한 자리에서 독립선언으로 주동자가 1차적으로 붙잡힐 경우 후속 거사를 주관하도록 위임받았다.
또한 1919년 2월 12일 동경 Y.M.C.A 기숙사에 있는 최승만의 방에서 변희용(卞熙瑢)·장인환(張仁煥) 등과 함께 제2차 유학생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여 그 준비단계로 조선청년독립단 민족대회소집촉진부 취지서를 600여매 등사, 이날 모인 유학생들에게 배부하고 시위하려던 계획이 일경에게 탐지되어 좌절되고 말았다.
1924년 4월에는 일경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고 감시가 더욱 극심해지자 일본과 국내에서 피신생활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550면
- 추도사(2·8독립선언동지 최원순의 사망시, 1950. 9월)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652·658·66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145·15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별집 제3집 23면
- 전남일보(19169. 1. 29)
- 전남매일신문(1972. 3. 2, 3. 3, 3. 4)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2권 649·650면
- 사진(2·8독립선언전 기념촬영, 宋斷白·金度演·白寬洙 등과 함께)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28·35·40면
- 서울신문(1989.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