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일찍이 1902~1905년 하와이 이민 시 미국으로 노동이민 갔다가 그곳에서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하여 이재명(李在明)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 후 공립협회에서 매국적 처단을 결의하고 1907년 10월 이재명을 파견할 때 그도 뒤따라 귀국하였다. 그리하여 이완용(李完用) 등 매국적 처단을 계획하던 중 1909년 11월 하순 평양성안의 박태은(朴泰殷) 집에서 이재명(李在明)·이동수(李東秀)·김정익(金貞益)·조창호(趙昌鎬)·박태은·전태선(全泰善)·이응삼(李應三)·오복원(吳復元)·김용문(金龍文) 등과 같이 이완용(李完用)·이용구(李容九)·송병준(宋秉畯) 등의 매국적을 처단함으로써 일제의 침략을 저지시키고자 계획하였는 바 그는 이재명·이동수 등 2인과 같이 제1차로 이완용을 처단하기로 결정하였다.
1909년 12월 20일 김용문으로부터 "이완용 등 매국 각료들이 이달 22일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례하기 위하여 명동성당에 나간다"는 연락을 받고 여러 동지들과 같이 무기를 분배하여 준비를 갖추었다. 1909년 12월 23일 일찍 이재명·이동수 등 두사람과 같이 명동성당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이재명은 군밤장수를 가장하고 문 옆에서 밤을 구우며 대기하고 그와 이동수는 각각 은신하여 외부의 동정을 살피며 이완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11시 30분경 이완용이 추도식의 참례를 끝내고 여러 매국각료들 틈에 끼어 성당을 나와 정문 앞에 대기시켰던 인력거에 막 올라타자 이재명이 비호같이 달려들어 이완용과 그 차부를 찔러 쓰러뜨린 뒤 이완용의 호위 경관들에 의해 붙잡혔으므로 그는 거사가 완전히 성공된 줄로 오인하고 동지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 하였다. 그러나 매국적 이완용은 죽지 않았고 그는 일경에 붙잡혀 경성재판소(京城裁判所)에서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52·45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476·477·480·482·485·486·489·490·92·493·495·502·503·515·521·528·529·554·555·558·559·562·565·566·568면
- 매천야록 532·538면
- 기려수필 15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252·25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