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진도(珍島) 사람이다.
1929년 11월 3일 전남 목포(木浦)에 소재하는 목포상업학교 2학년 학생으로 재학하고 있던 중 광주에서 한국과 일본 학생들의 충돌로 학생시위가 일어나자 일경들의 편파적 처리로 한국인 학생만을 검거하여 수감하고 있음을 알고 동년 11월 16일 학우인 이광우(李光雨)·이재실(李在實) 등과 함께 목포상업학교의 동맹휴교와 항의시위를 펼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2천만 피압박민중에 고함'이라는 격문 다수와 '피감금학생 즉시 탈환', '총독부 폭압정치 절대반대', '피압박민족 해방 만세' 등의 깃발을 준비하였다. 이윽고 1929년 11월 19일 목포 전시내를 돌며 격문을 배포하고 전선(電線)을 절단하며 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1930년 3월 20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및 출판법과 전신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30. 3. 20 光州地方法院)
- 光州學生獨立運動史 141∼145·279·308∼31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565∼507面
- 東亞日報(1930. 1 9, 2. 28, 3. 14, 3. 15, 3. 22)
- 朝鮮日報(1930. 3. 15, 3. 21, 3. 28)
- 豫審終結決定書(1930. 2. 24 光州地方法院 木浦支廳)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267∼27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