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개천(价川) 사람이다.
1919년 평남 개천에서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독립단을 조직하여 친일파인 평남 순천(順川)군수 박명준(朴明俊)을 살해하고자 관사에 폭탄을 장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20년 4월에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 유하현 고산자(奉天省柳河縣孤山子)에 위치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관전현(寬甸縣)에 있는 광한단(光韓團)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동년 10월 18일 현익철(玄益哲)·최만혁 등과 같이 귀국, 평양 북쪽에 위치한 금융조합 숙직실에서 일기관의 파괴, 군자금 모집, 지단설치 등의 계획을 추진하다가 1921년 1월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1년 4월 1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이란 죄명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9·237면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기려수필 29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6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986·989면
- 동아일보(1921.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