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18년 태을교(太乙敎)의 교도가 되어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였다. 태을교는 흠치교의 한 계파로서 1909년(융희 3) 교조 강일순(姜一淳)이 죽자, 부인 고씨가 1911년 창도한 민족 종교로서 민족의식을 강하게 내세웠기 때문에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이후 강일순의 추종자 차경석(車京石)의 실권이 커짐에 따라 보천교(普天敎)라 이름하였다.
정동원은 1937년 3월 5일경 정읍 일대에서 서보인(徐輔仁)·정휴규(鄭休圭)·강공일(姜公一)·정창묵(鄭昌黙) 등과 함께 신인동맹(神人同盟)을 결성하였다. 신인동맹은 미륵불을 신봉하던 보천교도(普天敎徒)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한 비밀결사단체로 그들은 지금의 후천개국(後天開國)의 기운을 타서 조국의 독립을 이룩해야 하며, 중일전쟁은 일본 패망의 전조이며, 쇼와[昭和]도 곧 퇴위할 것이라는 등 반일 의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을 쏟았다.
또 정동원은 1940년 5월 14일 예사부장(禮事部長)에 선임되어 조직 구성, 동지 획득, 자금 조성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 6월 9일경 신인동맹 천체(天體) 12개 부문의 조직과 전국 지체(地體)로서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에 각각 문관·무관 등을 조직 결성하는데 참여하였다. 한편 국권회복에 앞장서기를 결의하고 대원 50여 명으로 조(組)를 편성하여 경찰서 습격 등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교도 가운데 일본 경찰의 첩자 김병환(金炳煥)의 밀고로 전라북도 경찰부에서는 각 경찰서에 지시하여 1940년 12월 15일 오전 5시를 기하여 미륵교도 체포령을 내렸다. 정동원은 김제에서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43년 6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 중, 일경의 무자비한 고문 후유증으로 가석방되었으나 2일만에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徐輔仁 判決文(全州地方法院, 1943. 10. 15)
- 思想彙報 續刊(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1943) 10면
- 愛國의 巨佛(1949) 22~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