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3.21 산청군 (山淸郡) 신등면 (新等面) 단계리 (丹溪里) 와 단성면 (丹城面) 에서는 김영숙 (金永淑) 정태륜 (鄭泰侖) 의 주동 (主動) 에 따라 700여명 (餘名) 이 시위 (示威) 를 하고 그 다음날인 3.21 수천 명 (數千名) 의 군중 (群衆) 을 이끌고 성내 (城內) 장터로 나아가며 독립만세 시위 (獨立萬歲示威) 를 하다 일 헌병 (日憲兵) 이 주동자 (主動者) 6명 (名) 을 구금 (拘禁) 하니 주동자 (主動者) 등의 석방 (釋放) 을 요구 (要求) 하며 격렬 (激烈) 한 시위 (示威) 를 감행 (敢行) 하다가 일 헌병 (日憲兵) 의 발포 (發砲) 로 인 (因) 하여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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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남 산청(山淸)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丹城面 沙月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신등면 단계리(新等面 丹溪里)와 단성면 성내리(城內里)에서 김영숙(金永淑)·정태윤(鄭泰侖)이 주동이 되어 독립선언서와 '독립만세'라고 쓴 기를 만들고 3월 18일 밤을 이용하여 단계리·평지리(坪地里)·사정리(射亭里)·하정리(下丁里)와 단성면 일헌병분견대 부근 요소에, 준비한 선언문과 깃발을 붙여 3월 20일 거사일을 알리면서 군중의 분기를 촉구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20일 오후 2시경 단계리 장터에 모인 수천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성내 장터로 행진하며 밤늦게까지 시위하고 다음날인 3월 21일 다시 1천여명의 군중과 시위를 계속하자 일경이 김영숙·정태윤 등 6명을 구금하므로 주동자 석방을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가 일헌병의 발포로 인해 총상을 입고 이틀 후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20∼322面
- 陜川李氏族譜 11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