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
1905년 일제는 국권침탈과 토지수탈을 목적으로 국유지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소안면(所安面) 토지소유권을 왕실인 이기용(李琦鎔)에게 귀속시켰다. 이에 1909년 그를 비롯한 최성태(崔聖泰), 신완희(申阮熙), 이한재(李漢宰) 등은 면민(面民)대표가 되어 전면(全面)의 토지소유권 반환청구소(土地所有權 返還請求訴)를 제기하고 13년간에 걸친 투쟁 끝에 승소하였다. 면민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의연금 10,400원으로 학교를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마침내 1913년부터 1922년까지 걸쳐서 사립소안학교(私立所安學校)를 설립하였는데 그는 동교의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26년 5월 10일 일제는 사립소안학교가 독립군과 사회주의자를 양성한다는 이유로 사립학교령 제 16조를 내세워 강제폐교시키고 육지와의 교통을 차단하였다. 이에 1926년 7월 13일 이민(里民) 300여명이 모여 면민대회(面民大會)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그는 면민이 원하지 않는 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 설치의 진상과 의도를 알기 위한 대표로 선출되어 전남학무국(全南學務局) 으로 가서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1927년 6월 전남 학무국과의 교섭은 실패로 끝났으나 소안에서 복교운동을 전개하고 일본대판(大阪), 동경(東京) 등지의 완도향우회(莞島鄕友會)와 연계하는 등 지도적 위치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寫眞(私立所安學校女性敎練 : 1923年)
- 東亞日報(1927. 6. 11, 10.23)
- 卒業證書(1923. 3. 21 : 校長 金仕홍 發給)
- 朝鮮日報(1926. 7. 20, 1927. 5. 17, 5. 18, 6. 6,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