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24 경남 (慶南) 하동군 (河東郡) 옥종면 (玉宗面) 안계리 (安溪里) 독립만세’ (獨立萬歲) 시위 (示威) 를 주동 (主動) 하여 사전에 최인우 (崔寅愚) ·정화영 (鄭華永) 등과 인근에 연락을 취하는 등 계획을 세운 후 당일 (當日) 안계 (安溪) 장날에 운집한 군중 (群衆) 들을 향하여 독립항쟁 (獨立抗爭) 을 호소하는 웅변 후에 독립만세’ (獨立萬歲) 를 선창하고 수천의 군중시위대와 함께 시장에서 경찰 주재소 (警察駐在所) 앞까지 행진하며 활동 (活動) 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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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하동(河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24일 하동군 옥종면(玉宗面) 안계리(安溪里)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최인우(崔寅愚)·정화영(鄭華永) 등과 함께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인근 면 동리로 연락하는 등 군중을 규합하고 당일 장터에 모인 군중 앞에서 독립투쟁을 호소하는 연설을 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6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장터를 누비면서 시위를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 해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犯罪人名簿(河東郡 玉宗面長 發行, 1919. 4. 28 廓正)
- 3·1運動實錄(金龍洛) 699·700面
- 釜山·慶南 3·1運動史(3·1同志會, 1979. 9. 10) 620∼622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78·27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