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서울 창천감리교회 청년회원으로 있던 그는 1938년 3월 정은태(鄭銀泰)·이광운(李光雲)·이선영(李善泳) 등 21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친목을 가장한 항일결사 창천체육회(滄川體育會)와 조기회(朝起會)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아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항일독립운동의 방안으로서 조선총독과 일제고관을 암살하여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앙양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1941년 10월 거사에 대비하여 무기조작 기술을 습득할 목적으로 인천조병창(仁川造兵廠)에 입사하여 근무하던 중 이같은 사실을 탐지한 일경에 의해 1942년 붙잡혔다.
그는 1944년 5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