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一新女子高等普通學校)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17일 오전 9시,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및 진주고등보통학교(晋州高等普通學校) 학생 500여 명과 함께 1929년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그날 밤 10시 반경 무기동맹휴학(無期同盟休學)을 선언하고 해산하였다. 또한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만 따로 별동대(別動隊)를 조직하여 진주교(晉州橋) 앞에서 시위운동을 전개하려 했으나 학교당국의 제지로 좌절되었다. 이와 같은 진주 학생들의 동맹휴교는 진주공립농업학교(晉州公立農業學校)에서도 합세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좌절되어, 두 학교가 중심이 되었다. 이 일로 진주고등보통학교에서는 246명이 무기정학을 당하고 29명이 구속되었으며,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4명이 무기정학을 당하고, 2명이 구속되었다.
정금자는 같은 달 25일 동료학생 이을례(李乙禮)와 함께 또 다시 시위운동을 시도하였다. 이로 인해 이을례와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30년 3월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제2회로 졸업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학적부(學籍簿)(진주여고)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 18, 1. 20, 1. 22, 2. 13, 9. 17, 1931. 5. 30, 1932. 8. 14)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28, 6. 1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9권 6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