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3.15 의성군 (義城郡) 안평면 (安平面) 대사동 (大司洞) 에서 교회 (敎會) 영수 (領袖) 인 이종출 (李鍾出) 과 김옥돈 (金玉頓) 이북술 (李北述) 등의 결정 사항 (決定事項) 을 전 (傳) 해듣고 적극 (積極) 호응 (呼應) 하여 이날 모인 100여명 (餘名) 의 군중 (群衆) 과 더불어 대사동 (大司洞) 뒷산 (山) 에 올라가서 독립만세’ (獨立萬歲) 를 고창 (高唱) 하였으며 계속 (繼續) 3.16~3.19 4일간에 걸쳐 시위 (示威) 를 계속 (繼續) 하다 동년 (同年) 3.19 피체 (被逮) 되어 징역10월을 받았으나 미결기간 (未決期間) 을 합산 (合算) 하여 11월24일간의 옥고 (獄苦) 를 치루었고 주동자 (主動者) 로서의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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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의성군 안평면 대사동(安平面 大司洞)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이곳 교회의 영수(領袖) 이종출(李鍾出)·김옥돈(金玉頓)·이북술(李北述) 등 수 명이 주동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을 거사키로 합의된 결정사항을 전해 듣고 적극 호응하였다. 이날 오후 7시 이들은 100여명과 군중과 더불어 대사동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3월 16일에도 만세시위는 계속되어 100백여명의 군중과 더불어 기도동(箕道洞)을 거쳐 창길동(倉吉洞)까지 시위행진을 전개하고 3월 17일에는 창길동을 거쳐 화령동(花寧洞)까지 시위행진을 벌이는 등 3월 19일까지 나흘간에 걸쳐 인근 동리까지 진출하며 독립만세를 전개하다가 주동자의 한사람으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1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72·374面
- 執行原簿(朝鮮總督府)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06∼130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