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영양의병장 (英陽義兵將) 조승기 휘하 (趙承基麾下) 에서 의병 (義兵) 으로 활약 (活躍) 하다 1910년 이상용 (李相龍) (외종형 (外從兄) )과 서간도 (西間島) 로 이주 (移住) 키로 밀약 (密約) 하고 동지 (同志) 를 규합 (糾合) 하여 1911년 3월 도만 (渡滿) 하여 통화현 (通化縣) 과 유하현 (柳河縣) 을 중심 (中心) 으로 이상용 (李相龍) 김대락 (金大洛) 이장영 (李章寧) 김동삼 (金東三) 등과 함께 경학사 (耕學社) 와 신흥학교 (新興學校) 운영 (運營) 등에 참여 (參與)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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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영양(英陽) 사람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에 분격하여 1896년 외종형인 이상룡(李相龍)을 만나 의병봉기를 계획하는데 참여하였고, 영양지역 의병장인 조승기(趙承基) 휘하의 의병을 지원하여 소년의병으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이 강제로 침탈당하자 이상룡과 밀약을 나눈 뒤 서간도(西間島)로 이주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이장녕(李章寧)·김대락(金大洛)·김동삼(金東三)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1911년 3월 가족을 동반하여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건너갔다.
그후 통화현(通化縣)과 유하현(柳河縣)을 중심으로 이상룡·김대락·이회영(李會榮)등 동지들과 유대를 공고히 하며 독립운동의 방략을 모색하면서 경학사(耕學社)와 신흥학교(新興學校) 운영에 따른 동지규합 및 독립운동기지 확장 등의 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西征錄(金大洛)
- 石洲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