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학생과 광주중학교 일인 학생의 쟁투를 계기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지지하는 동조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30년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의 단천공립농업보습학교 1학년에 재학하던 이성수는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를 추진하였다. 1학년 반장인 김덕원(金德原)과 함께 각 학년 학우들의 찬동을 얻은 후 2월 14일의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학교에 구속 학생의 석방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시내로 진출하여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동지들과 준비를 갖추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탐지되어 김득수(金得洙)·김창훈(金昌勳) 등 학우들과 2월 10일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북청검사국에 송치되었으나 2월 27일 방면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2. 14, 3. 8)
- 광주항일학생사건자료(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조선총독부 경무국, 1979) 2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