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이곳 예안(禮安) 일대를 비롯한 안동지방은 전통적으로 유교의 사상적 영향이 강한 곳으로 한말에는 척사위정(斥邪衛正)의 의병운동이 성하였고 일제의 조국강점(强占) 후에는 항일독립운동이 그 전통을 이루어왔다. 1919년 3월 1일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양반의 후예로 배일 독립사상이 강한 애국지사였던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의 발기에 의하여 이광호(李珖鎬)·이시교(李時敎)·이중원(李中元) 등의 결정에 따라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여 예안의 장날인 3월 17일을 거사일로 약정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의 제작은 면사무소의 등사기를 이용하였고 면내 각 동리로 연락하여 동지를 규합하였다. 드디어 약정한 3월 17일이 닥쳐왔고 비밀연락에 따라 수천 명의 시위군중이 모이자 면사무소 뒷편에 있는 선성산(宣城山)에 올라가서 일본인들이 세워놓은 소위 대전기념비(大典紀念碑)를 쓰러뜨리고 태극기를 높이 들며 독립만세를 외친 다음 3개 시위단으로 나누어 거리를 행진하다 20여명이 연행되었다. 격분한 군중은 경찰주재소로 몰려가서 유리창과 문짝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군중과 함께 시위하다가 3월 17일 하오 6시경 붙잡혔다. 이렇게 제2차 예안면 예안읍 장터의 의거는 민족적 측면에 선 애국적인 면장과 면서기들이 주동이 되어 애국군중을 봉기케 한 의거로 당시 다른 지방의 면장과 면서기들이 대부분 친일적 경향이 강했던 것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는 이해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事件簿(大邱地方法院 安東支廳)
- 3·1 運動實錄(李龍洛) 74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95·39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