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 경성제2공립고등보통학교 (京城第二公立高等普通學校) 3학년으로 광주학생운동에 공감하여 김주성 (金周晟) 등과 비밀회합을 갖고 3학년 병조 (丙組) 의 동맹휴학 (同盟休學) 을 독려하는 임무를 맡아 동년 12월 동교의 동맹휴학 (同盟休學) 을 추진하였다가 동년 12월 27일 퇴학 (退學) 처분을 받고 1930년 9월경 서울청년회 (靑年會) 의 후신인 중앙청년동맹 (中央靑年同盟) 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32년 7월경 변홍균 (卞洪均) 의 권유에 따라 양평농민조합재건준비위원회 (楊平農民組合再建準備委員會) 에 가입한 후 1933년 11월경 이정환 (李正煥) 의 지도 하에 양평적색농민조합위원회 (楊平赤色農民組合委員會) 에 가담하여 여주지구 (驪州地區) 강상면 (江上面) 세월리반 (洗月里班)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1934년 2월 체포되어 옥고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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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까지 서울에서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윤영섭은 1929년 11월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京城第二公立高等普通學校) 3학년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동료들과 비밀회합을 갖고 3학년 병조(丙組)의 동맹휴학을 독려하는 임무를 맡아 추진하였으며, 1929년 12월 5일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동년 12월 27일 퇴학처분을 받았다. 1930년 9월경 서울청년회의 후신인 중앙청년동맹(中央靑年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한편,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조합 및 적색농조 조직 및 운영을 담당하였다. 윤영섭은 양평농민조합재건준비위원회(楊平農民組合再建準備委員會)에 가입한 후 1933년 11월경 양평적색농민조합위원회(楊平赤色農民組合委員會)에 가담하여 여주지구 강상면(江上面) 세월리반(洗月里班)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34년 2월 일경에 붙잡힌 윤영섭은 소위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는 명목으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공산주의운동사(李起夏) 제1권 1243·1245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제49권, 別集 제5권 469면
- 學籍簿(京城第二公立高等普通學校)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권 59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