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영덕(盈德)·영해(寧海)·영양(英陽) 등지에서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陣)의 포대장(砲大將)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3월 13일 영덕에서 창의한 신돌석은 경상북도·강원도 등 동해안 일대에서 기민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돌석은 일월산(日月山)·백암산(白巖山)·대둔산(大遯山)·동대산(東大山)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을 위협하였다. 1907년 8월 군대해산 이후 구한국군의 합세로 군세를 크게 떨쳐 영양·진보·청송·경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기도 하였다. 1908년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가 돌아온 신돌석은 평해·영양·울진·봉화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11월 18일 영덕 눌곡에서 김상열 형제들에게 피살되었다.
신태종은 신돌석의진의 포대장으로 1906년 3월부터 1908년 11월까지 영해·영양·청송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략하였다. 특히 청송군 안동진위대(安東鎭衛隊)와의 전투에서는 연합작전을 구사하기 위해 산남의진(山南義陣)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908년 11월 신돌석의진이 해산된 뒤 귀가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울진군 기성면으로 피신하여 산전을 개간하며 연명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盈德郡誌(盈德郡, 1967) 609~610면
- 救國倡義錄-壬亂·韓末 盈德地域編-(盈德郡) 349~351면
- 申乭石將軍實記(196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