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8년 4월 6일 경상북도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했으며, 1941년에는 심상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일제가 전선을 확대하자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비축물량이 빈약한 일제가 패배해 독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학생들의 민족적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1940년 11월 23일 8회생 박효준(朴孝濬), 이태길(李泰吉) 등과 9회생 유흥수(柳興洙), 문홍의(文洪義) 등은 이태길의 하숙집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문예부’를 내세우며 조직했다.
이들은 1941년 2월 8회생들의 졸업을 앞두고 조직의 확대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 8회생들은 졸업 후 교사로 부임하는 즉시 어린이와 학부형의 민족의식을 높이는 데 노력하기로 했다. 또한 ‘문예부’조직은 9회생들을 중심으로 운영하되 손경익을 비롯한 10회생과 11회생들이 지하활동을 지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7월경 8회 졸업생이었던 정현(鄭鉉)의 숙소가 가택수색을 당하면서 ‘문예부’회지와 편지가 발각됐다. 이어 충청남도(忠淸南道) 논산군(論山郡) 노산국민학교(魯山國民學校) 재직 중인 박찬웅(朴贊雄)의 집에서 활동보고서가 발각됐다. 이로인해 관련 혐의로 300여 명이 체포됐다.
손경익은 다른 이들보다 2~3주일 뒤에 체포돼 증거서류 등을 없앨 수 있었다. 이로 인해 1941년 12월 기소유예 처분을 선고받고 석방됐으나 이른바 ‘사상문제 저촉’으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학적부(學籍簿)(경북대학교)
- 대구사범심상과지(대구사범심상과동문회, 1991) 299, 300, 4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