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4월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7일경, 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은 손율기(孫栗基)의 권유로 광주학생운동을 지원하는 동교의 동맹휴교 책임을 맡았다. 당시 한국인 학생이 일본인 학생에게 맞아서 다수가 부상을 당하고 사망자도 있다는 말을 듣고, 이를 수락하였다. 이후 동교 2학년생 정부균(鄭富均)과 협의하여, 먼저 학교당국에 진정서(陳情書)를 제출하고 9일 만세를 부르며 일제히 맹휴(盟休)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손율기와 함께 “광주학생운동 희생자의 무조건 석방, 언론·집회의 자유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서를 작성하고 맹휴를 진행하려 했으나, 당일 아침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좌절되었다. 당시 부기준은 조선학생전위동맹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1930년 1월 18일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았다.
잠시 피신해 있다가 3월 28일 일본으로 건너가, 4월 6일 히로시마현(廣島縣) 구레시(吳市)에 있는 사립 고분중학교(興文中學校) 5학년에 편입하였다. 5월 7일 구레시로 출장온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 형사에게 체포되어 11일 밤 종로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취조 결과 계획 단계에서 그쳤기 때문에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30일 석방되었다.
1931년 4월 22일 중앙청년동맹 북구지부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7~8월경 박영희(朴英熙) 등이 중심이 된 ‘프로예술동맹의 격문 배포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8월 말경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4. 5)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5. 13~14, 6. 1)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5. 13~14, 1931. 8. 24)
- 사상(思想)에 관한 서류(書類)(1)
- 사상(思想)에 관한 정보철(情報綴)(6)
- 사상(思想)에 관한 정보(情報) 부본(副本)
-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학적부(學籍簿)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2003) 제53권 243~248면
- 제주항일독립운동사(濟州抗日獨立運動史)(1996) 908면
- 제주항일인사실기(2005) 3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