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27년 2월 홍명희(洪命熹)·안재홍(安在鴻) 등은 민족협동단일전선체로서 신간회(新幹會)를 발족시킨 뒤, 이미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서울청년회계(系) 사회주의자들과의 협동전선체적 성격을 띠고서 1926년 7월에 발족해 있던 조선민흥회(朝鮮民興會)측과의 합동 교섭을 개시하여, 민흥회측이 신간회로 합류한다는 합의를 얻어내고 성공적인 합동을 기하게 되었다.
이때 민흥회측 대표 5인 중의 1인이던 그는 신간회로 합류한 뒤 1927년 12월 신간회 경성지회(京城支會)의 서무부 총무간사로, 1929년 7월 중앙상무위원과 조직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29년 12월 그는 신간회의 다른 간부들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을 옹호, 지원하기 위한 민중대회를 서울 안국동(安國洞)에서 개최키로 결정하여 행사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던 중 일경의 사전 검속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 후 1930년 11월 신간회 제4회 중앙집행위원회 석상에서 서기장(書記長) 겸 서무부장에 임명되어 1931년 2월에 신간회가 해소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간회 해소론을 반대하고 조직을 보위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57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10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76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301·313·340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63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585면
- 동아일보(1927.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