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그의 조부는 가족을 이끌고 북간도 용정(龍井)으로 망명하여 교회를 세우고, 은진(恩眞)중학교와 명신(明信)여자중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에 주력하였다고 한다.
그는 어린 나이로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일경의 감시가 심하여 다시 북간도로 돌아갔다. 연길현 옹성랍자(甕聲 子)에서 대한국민회에 가담하여 제15지회장으로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홍범도(洪範圖)사령관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에 소속되어 수차 국내에 진입하여 군자금 모집 등 활동을 하였으며 체코군으로부터 사들인 무기를 노령 연해주(沿海州)로부터 운반하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한다. 특히 연길현내의 일본 밀정을 색출하여 사살하는 등 격렬한 무장활동을 하였으며, 1924년 가을에 용정 주재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청진으로 압송되었다.
그리하여 청진지방법원에서 1925년 1월 21일 징역 2년형을 받았으나, 경성복심법원에 공소되어 1925년 3월 16일 소위 제령 7호 위반 및 강도·살인이라는 죄명으로 동지 강동열(姜東烈)과 함께 각각 징역 1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다시 만주로 돌아갔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1937년 11월에 병사하여 명월구(明月溝) 제1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한다.(1989년 대전현충원 이장) 광복되는 날 대동군(大同郡) 선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이 있었으나 남북분단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5. 3. 16 경성복심법원)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동아일보(1925.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