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1919년 당시 오성면 학현리(梧城面 鶴峴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평소 자주독립을 염원해 오던 중 이해 4월 1일 오성면 안화리(安化里)에서 처음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자 그에 호응하여 화성군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한 몫을 하였다.
그는 4월 3일 밤 마을 뒷산인 봉오산(鳳梧山)에 올라가 김용성(金容成)·공재록(孔在祿) 등과 함께 주동이 되어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과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20 京城地方法院)
- 判決文(1919. 6. 30 京城覆審法院)
- 判決文(1919. 8. 21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70·171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409·41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