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의성군 소문면 대리리(召文面 大里里)에 거주하는 기독교 집사로 이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대한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높아지자 이 소식을 듣고 이곳에서도 동지를 모아 대리리 교회당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회합을 갖고 1919년 3월 18일 의성읍 장날을 기하여 봉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이날 박낙현(朴洛鉉)·윤영주(尹營柱) 등과 함께 100여 매의 태극기를 만들고 '대한독립만세'라고 붉게 쓴 큰 깃발을 감추어 장터로 나아가서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큰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의성읍에서 안평(安平)·의성(義城)·소문(召文)면의 기독교도와 학생들이 시위운동을 벌일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일경에 의해 저지되었는데 이때 그도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고 4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었으며, 5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4. 5 大邱地方法院)
- 判決文(1919. 5. 22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82∼38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14∼131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