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성주(星州) 사람이다.
성주군은 유림(儒林)이 많이 사는 곳으로 배일사상이 어느 지방보다 강하였다. 1919년 성주읍에서도 전국의 독립만세운동에 따라 3월 28일 장날에 읍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일이 있으나 큰 운동으로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그후 1919년 4월 2일 유림 계통과 기독교 계통이 연합운동을 펴 함께 봉기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인 의거로 발전할 수 있었다.
4월 2일 성주읍 장날은 닥쳐왔다. 주동인물들은 의거의 준비물을 숨겨 장터로 잠입하였고 오후 1시경이 되자 장꾼들은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때 성주읍 경산동 관제묘(京山洞 關帝廟) 뒷산에 모인 유림측과 기독교인들이 합세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군중은 3,000여 명에 달하였고 오후 10시경까지 만세 시위는 계속되었다. 그는 이날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경찰서와 군청 앞으로 시위행진 하며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5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23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65·366·367·46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