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강진(康津) 사람이다.
1931년 강진군 군동면(郡東面) 일대의 벼수확이 감소하여 소작인들의 소작료에 대한 분규가 심하자 그는 장명환(張明煥) 등과 같이 소작료 인하투쟁을 하기로 계획하고 같은해 11월 27일 군동면 장날을 기하여 소작료인하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일본인 지주를 비롯 한국인 지주들로부터 소작료 인하의 성과를 올린 후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1932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폭력행위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36년 9월 4일 강진군 군동면 금사리(金沙里) 일대에서 조정구(趙政九) 등과 함께 개량서당(改良書堂)을 개설, 학생들의 독립정신 함양을 도모하는 한편 노농(勞農) 운동에 헌신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32. 2. 26 光州地方法院 長興支廳)
- 判決文(1936. 12. 28 光州地方法院 木浦支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