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황유현은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천현면(泉峴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 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유현은 1909년 멕시코 메리다주에서 공립협회, 대한인국민회 회원으로 독립운 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3.1운동 당시 고향에 있었던 그는 1919년 3월 1일 경성에서 입수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파주군 천현면 법원리(法院里) 자택으로 가 지고 돌아왔다. 이미 파주군에서는 3월 10일부터 와석면(瓦石面) 교하리 공립보통 학교 운동장의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유현은 주민 들에게 선언서와 신문에 기재된 취지를 역설하며, 3월 25일에 천현면사무소에 모 여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주장하였다. 황유현은 25일이 되자 오전 10시경부 터 천현면사무소에서 군중 400여명을 지휘하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오 후 8시경에도 군중 200여명을 지휘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다음날 26일은 파주군의 군청 소재지 문산의 장날이었다. 황유현은 군중 700 여명을 인솔하여 문산시장에 가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날은 와석면사무소 앞 에서도 주민들이 면사무소 유리창을 깨뜨리며 시위를 했고, 청석면(靑石面)에서 도 밤에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 다음날에도 청석면사무소, 광탄면(廣嘆 面)사무소 등 파주군 각 면에서 봉화와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후 체포된 황유현은 5월 2일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6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상고 가 기각되었다. 그는 다시 상고하였으나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3·1운동비사(李炳憲 編, 1959) 884면·坡州郡史(坡州郡史編纂委員會, 1984) 上 245, 247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2005) 제1권 407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2005) 제5권 407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2005) 제19권 190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26.)
- 刑事控訴事件簿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3) 별집 제9집 481면
- 新韓民報(1909. 5. 26, 11. 24)
- 勸業新聞(1912. 4. 22)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