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의성군 안평면 마전리(安平面 馬轉里)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봉양면 도리원(鳳陽面 桃李院)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에 앞서 이화실(李華實)의 권유에 따라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킬 목적으로 1919년 3월 16일 밤 이곳 마전리에서 기도리(箕道里)까지 5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벌였으며 며칠 뒤인 19일에도 만세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1시경 봉양면 도리원 장터에서 1,000여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고 6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6. 12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7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09·191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