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1월 오양선 의진 (吳良善義陣) 에서 입진 (入陣) 하여 의병활동 (義兵活動) 하면서 정택하 (鄭澤夏) 전봉학 (田奉學) 채한영 (蔡漢榮) 등과 「총 (銃) 칼」로 무장 (武裝) 하고 다니다가 충남 (忠南) 홍주군 (洪州郡) 화성면 (化城面) 에 거주 (居住) 하는 이종국 (李鍾國) 이 친일 (親日) 일진회원 (一進會員) 으로서 의병 (義兵) 의 동태 (動態) 를 탐지 (探知) 하여 일헌 (日憲) 에게 밀고 (密告) 하고 있음을 알고 그를 동지 (同志) 들과 함께 끌고나와 참살 (斬殺) 한 후 (後) 일경 (日警) 에게 피체 (被逮) 되어 종신형 (終身刑) 을 받고 옥고 (獄苦) 를 치르다가 1919년 8월 출옥 (出獄) 함으로서 10년 2월간 (月間) 복역 (服役)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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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남 홍성(洪城) 사람이다.
오양선(吳良善)이 이끄는 의병진에 가담한 뒤 1908년 11월 19일 정택하(鄭澤夏)·전봉학(田奉學)·채한영(蔡漢榮) 등과 같이 총칼로 무장하고 홍주군(洪州郡) 화성면(化城面) 제곡동(齊谷洞)으로 가, 의병의 동태를 탐지해 일제 헌병에게 밀고하던 친일 일진회원(一進會員) 이종국(李鍾國)을 결박하여 같은 면 용두리(龍頭里)로 끌고가 참살(斬殺)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 뒤 1909년 6월 11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모살죄(謀殺罪)로 종신 징역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6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감형되어 1919년 8월 출옥한 후 1940년 3월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中國 遼寧省 鐵寧市 公證處 公證(死亡事實)
- 判決文(1909. 8. 16 京城控訴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35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