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평북 의주군 천도교 교구장(敎區長)으로 있으면서 3·1운동 때 의주지역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때 그는 최동오(崔東旿)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인근 7개 군에 배포하는 등 평북지역 만세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3·1운동 이후 그는 1919년 7월에 최동오를 비롯하여 김의종(金義宗)·신숙(申肅) 등의 해외 망명을 배후에서 도왔으며,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임시정부 연락기관으로 삼산상회(三山商會)를 세우는 등 의주를 거점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만주독립군에 대한 군자금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7월 그는 군자금 3천여 원을 모집하던 중, 동지 김의종이 일경에 붙잡힐 때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천도교의 지도자로 활동하는 한편 천도교의 항일조직인 오심당(吾心黨)에 관계하다가 1934년 붙잡혔다. 오심당은 1923년 천도교 청년조직의 핵심적 지도자들이 점조직의 형태로 조직한 것으로, 일제가 국제적으로 고립될 때를 이용하여 일제히 독립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자금 모집 및 조직 기반을 확충해 나갔다. 그러나 1934년 9월 발각되어 당원 230여 명이 붙잡혔고, 당원들은 60여 일 동안 고초를 치러야 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보(1936) 제6호 328면
- 신인간(1962. 12월) 제229호 77·7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709∼71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162면
- 나의 일생(신숙, 1963) 52∼5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463·467·478면
- 동아일보(1921. 7. 20, 8. 4, 8. 10,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