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2월 심남일 (沈南一) 의병장 (義兵將) 이 창의 시 (倡義時) 입진 (入陣) 하여 후군장 (後軍將) 으로 임명 (任命) 되어 1908. 3월부터 강진 (康津) 오치동 전투 (吾治洞戰鬪) 를 비롯하여 남평 (南平) , 영암 (靈岩) , 장흥 (長興) , 해남 (海南) 능주 등 (綾州等) 9회에 걸쳐 왜군 (倭軍) 과 전투 (戰鬪) 하고, 1908.10.27 일 헌병대 (日憲兵隊) 소탕 계획 (掃蕩計劃) 을 세우고 있을 때 이를 탐지 (探知) 한 30여 (餘) 왜병 (倭兵) 이 내습 (來襲) 하여 10여차 (餘次) 치열 (熾烈) 한 공방전 (攻防戰) 을 치루고 승부 (勝負) 를 가리지 못하자 직접 (直接) 왜군 (倭軍) 을 꾸짖으며 싸우다가 총탄 (銃彈) 에 맞아 순국 (殉國) 한 상당 (相當) 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전남 나주(羅州) 사람이다.
1907년 12월 5일 심남일(沈南一) 의병장이 기의하여 1908년 3월 600여명을 소집하였을 때 입진하여 노병우(盧炳友)·나성화(羅成化)와 같이 후군장(後軍將)이 되어 1908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일경과 항일전투를 벌였다.
1908년 3월 7일 동 의병진은 강진(康津) 오치동(五治洞) 전투를 비롯하여 남평(南平)·영암(靈岩)·장흥(長興)·해남(海南)·능주(綾州) 등지에서 9회에 걸쳐 왜군과 전투하였다.
동년 10월 27일 심남일 의병진이 나주(羅州) 노안(老安)에서 머물러 있던 중 다음날 능주에 있던 일본 헌병부대를 소탕하기 위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왜군이 탐지하고 30여 왜병이 의병진을 습격하므로 10여 차례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자 호령하면서 돌진하여 싸우다가 왜군의 총탄을 맞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573·576·59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