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함남 홍원(洪原) 사람이다. 1919년 2월 용정촌 영신학교(永新學校) 내에서 기독동지청년회(基督同志靑年會)를 조직하고 강연회 연사로 활동하였으며, 동월 간도(間島) 국자가(局子街)의 이홍준(李弘俊)·이성근(李聖根)·박동원(朴東轅)·김영학(金永學) 등과 용정촌(龍井村)의 김정(金精), 팔도구(八道溝)의 유예균(劉禮均), 평강(平康)의 고동환(高東煥) 등이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통일체로 대한독립기성총회(大韓獨立期成總會)를 조직하자, 이에 의사부원(議事部員)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동년 3월 간도거주 한인대표자들이 독립운동자금 모집차 각지에 특파원을 파견할 때, 용정촌과 두도구(頭道溝)지방 위원으로 선정되어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3·13 용정독립만세시위(龍井獨立萬歲示威)에 참여하였다가 본적지에 안치(安置)되었다. 그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감독부(監督府) 함남총감부(咸南總監府) 홍원군 담당, 1920년 1월 연통제(聯通制) 함남 홍원군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1919년 음력 7월 북간도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서 파견한 박용운(朴龍雲)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의뢰받고 홍원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송부하였다. 1920년 경에는 황병길(黃丙吉) 등이 조직한 맹호대(猛虎隊)의 용정촌 통신기관을 담당하였으며, 동년 12월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 창립총회시 홍원청년구락부(洪原靑年俱樂部) 대표로 참석하여 교무부(敎務部) 상무위원 등으로 순회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21년 4월 군자금모집 사실이 발각되어 일경에 붙잡힌 그는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1년 6월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22년 5월 조선청년회연합회 순회강연단 연사로 활동하며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던 그는 일경에 의해 요시찰인으로 지목되어 국외추방되어 간도 용정에 거주하면서 군자금 모집 등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46·111·133面
- 韓國獨立運動史(문일민) 199·30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4卷 290·463面
- 韓國靑年運動史(선우기성, 1973) 461·493面
- 朝鮮獨立運動(김정명) 第2卷 796·812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3卷 5·8·482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493·495面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6卷 132面
- 韓國民族獨立運動史料(國會圖書館) 3·1運動篇 其1 719·721面
- 韓國民族獨立運動史料(國會圖書館) 3·1運動篇 其2 395·419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9輯 349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0輯 1157∼1159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462·474·477面
- 獨立新聞(1920. 1. 22)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21. 6. 6)
- 東亞日報(1920. 8. 9, 1922. 6. 1, 1922. 6. 10)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9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0卷 984·988面
- 武裝獨立運動秘史(채근식) 71面
- 韓國民族獨立運動史料(國會圖書館) 3·1運動篇 其3 50·53·300·355·57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1輯 8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