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황해 신천(信川) 사람이다.
1918년 11월 동삼성(東三省) 길림(吉林)에서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에 서명하였던 대표 39명중 한사람으로 서명하고 일제의 전제적 학대와 압박에서 벗어날 것을 선포하였다.
1918년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상해(上海)에서 창당하여, 이사장으로 서병호(徐丙浩)를 추대하였고, 김 구(金九)와 함께 이사에 피임되었다.
1919년 11월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서 국내조사원제(國內調査員制)를 실시할 때 황해도 신천군(信川郡)의 조사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1919년 상해(上海)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의 정기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21년에는 상해(上海) 임시정부의 특파원으로서 왕덕삼(王德三)과 함께 동삼성(東三省) 간도(間島)에 파견되어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간의 군사통일조정을 위하여 활동하였고, 군사협회(軍事協會)를 조직하여 30명중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또한 노령(露領) 니코리스크에서 중로(中露) 연합선전부(聯合宣傳部)를 조직하여 선전부장이 되어 간도(間島) 지방에 있는 일본 군경에 대한 정찰 및 전투를 하며 활동하였다.
1921년 간도와 혼춘(琿春) 지방에서 독립운동의 선전 및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활동을 하였다.
1921년 7월 중국 상해에서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 조직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방략과 편견 등을 조정하는데 주력하였다.
1922년 상해에 있는 중·한 호조사(韓·中互助社) 총사를 설립하고 영업과 간사가 되어 중국민과의 친화를 도모하며 한문으로 된 독립신문(獨立新聞)의 발행 및 그의 선전과 군자금 모집을 위주로 활동을 전개시켰다.
1922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고, 같은해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수뇌부들이 공산당으로 변신하여 당내부에 분열이 생기자 임시정부계열인 백범(白凡) 김 구(金九)와 김인전(金仁全) 등과 함께 탈당하였다.
1923년 10월 24일 상해(上海) 교민단 제4회 의원선거에서 본구역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에서 193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은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사업(造船事業)으로 위장하고 공작선(工作船) 건조에 진력하는 한편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홍콩(香港)으로 피신하였다.
1939년 6월 뇌병으로 고통을 받아 중국 각지를 이주하다가 은퇴생활을 하였다.
1949년 3월 17일 마침내 상해에서 뇌병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년감 43·53·60·81·85·121·132·167·182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3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59·60·63·64·74·139·441·445·447·461·465·474면
- 김구동정관련건(총독부경무국) 498·513면
- 고등경찰요사 34·36·46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42·45·63·120·135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43·144·152·154·155·159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3권 82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335·453·45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2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05·210·363·36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12·239·242·301·472·47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52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94·77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8·133·134·439·478·536·615·628·941·969·97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0·152·290·323·410·415·7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