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친부 (親父) 이강년 (李康秊) 거의 (擧義) 하자 일제 (日帝) 의 감시 (監視) 와 사가 (私家) 에 대 (對) 한 방화 (放火) 로 인 (因) 하여 형 (兄) 승재 (承宰) 와 같이 입진 (入陣) 하여 단양 (丹陽) 제천 (堤川) 강릉 (江陵) 등지 (地) 에서 전투 (戰鬪) 할 때 종군 (從軍) 하다가 1908.6.4 이강년 의병대장 (李康秊義兵大將) 이 일군 (日軍) 에게 피체 (被逮) 되어 서대문형무소 (西大門刑務所) 에서 교수 (絞首) 순국 (殉國) 할 때 승재 (承宰) 와 같이 서울로 상경 (上京) 하여 항의 (抗議) 하자 일시 (一時) 감금 (監禁) 되었다가 방면 (放免) 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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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문경(聞慶) 사람이다.
경상·충청·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장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의 아들이다. 1905년 을사조약 늑결이후 부친이 향리에서 거의(擧義)함에 일제의 탄압과 감시가 극심해지고 가옥까지 방화해 버리자 형 승재(承宰)·긍재(兢宰)와 함께 단양(丹陽)·제천(堤川)·연풍(延豊)·영월(寧越)·강릉(江陵)·청풍(淸風)·문경 등지를 전전하며 의진에 종군하였다.
1908년 6월 4일 청풍 작성(鵲城) 전투에서 부친이 전상을 당하여 일군에 붙잡히고, 같은해 9월 19일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게 되자 형들과 함께 부친의 유해를 안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全州李氏大同譜鑑(下) 299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345面
- 討東召集檄文(原本) 2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