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3월부터 7월까지 전북 순창군(淳昌郡) 일대에서 양윤숙의진(楊允淑義陳)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양윤숙 의병장은 1906년 6월 최익현(崔益鉉)이 주도한 태인(泰仁) 의병에 가담하고 1907년 후반 순창 회문산(回文山)을 근거지 삼아 의병을 일으켜 약 200명의 의병을 이끌었다. 이 의진에는 최산흥(崔山興)이 중군장으로 활동하였다. 최산흥은 1907년 10월부터 이경춘의진(李慶春義陳)에 가담한 것을 계기로 그 후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陳)에서 활동하다가 순창을 기반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양윤숙의진에 합류하였다. 양윤숙의진은 주로 전북 순창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임태원은 양윤숙의진에 참여해 1908년 음력 3~7월 사이에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9년 9월부터 일제가 전라도 의병들을 진압하기 위해 전개한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과정에서 10월 하순경 순창 헌병분견소에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15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9월 사면으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1. 1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731~732면
- 淳昌郡誌(淳昌郡誌編纂委員會, 1982) 1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