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북 순창(淳昌) 사람이다. 1906년 10월 이경춘(李慶春)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간 뒤, 도십장(都什長) 및 전포장(前砲將)이 되어 그해 12월까지 120여명의 부하 의병을 이끌고 태인(泰仁)·부안(扶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이석용(李錫庸) 의병장과 함께 검찰(檢察)이라는 직무를 맡아 12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임실(任實)·남원(南原)·진안(鎭安)·용담(龍潭) 등지에서 일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 뒤 1908년 6월에는 양윤숙(楊允淑) 의병장의 휘하로 들어가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500~50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임실·순창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였고, 특히 1908년 3~4월에는 임실 상동(上洞)에서 일인을 처단코자 부하 100명과 함께 임실 수비기병대와 주재소를 습격하여 기병 1명을 살해하고 2명을 부상시켰다. 또 1908년 11월 초순에는 양윤숙 의병장의 지시로 검찰(檢察) 직무를 맡은 최명칠(崔明七)에게 명하여 의병 34명을 이끌고 순창군 서기 조명운(曺明云)으로부터 500냥의 군자금을 모금케 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으며, 같은 해 12월 15일 양윤숙 이하 동료 의병 50~60명과 함께 일제 기병에게 협조한 변대주(邊大主)의 집을 소각한 뒤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1909년 12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1910년 3월 3일 대구공소원과 4월 8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형이 집행됨으로써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09. 12. 27 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判決文(1910. 3. 3 大邱公訴院)
- 判決文(1910. 4. 8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537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732·747∼751·765·774·806·826·832·838·860·866·878·880·902面